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제일 먼저 거론되는 작가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일 것이다. 인상주의의 끝자락에 합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조의 대표작가로 인식되어 온 고흐의 작품이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이번 글에서는 당대 유럽을 강타했던 일본의 세속화 우키요에(浮世絵)가 고흐의 미술에서는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그가 남부 프랑스 아를(Arles)에 마련했던 'an artist colony'스튜디오와 이곳에서 제작했던 '해바라기 (Sunflower, 1888-9)'와 '의자(Chair, 1888)'작업을 통해 면밀히 관찰해 보고자 한다.
우키요에가 고흐의 작품에 미친 영향
인상주의 미술이란 자연광을 통해 반사되어 사물에 투영된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들을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회화적 기법을 차용한 미술사조를 일컫는다. 기존의 회화가 어떠한 주제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의 역할에 그쳤다면, 인상주의 회화는 화면의 구성과 색채가 가지는 물성 그 자체를 연구하여 2차원적인 평면가지는 특징을 살려내었다. 다시 말해, 회화가 수단이 아닌 회화 그 자체가 곧 작업의 주체가 된 첫 번째 사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인상주의 회화의 독창성에 커다란 기여를 한 또 다른 미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일본의 세속미술인 '우키요에'이다. 현재, 세계가 한류의 열풍에 열광하고 있다면 당대 유럽의 예술인들은 일본의 원조 팝아트라고도 할 수 있는 '우키요에'에 열광했다. 일본 에도시대 서민들의 삶과 향락의 모습을 목판화 기법을 통해 담아낸 우키요에는 그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채의 조합으로 한 번 그리고 독특한 평면적 화면구성으로 또 한 번 인상주의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주로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진한 가부키 화장을 한 화류계의 여성들과 술 그리고 향락의 모습들과 벚꽃놀이, 파도, 빗내리는 장면 등 매우 감각적인 장면들을 화면에 담았던 이 일본의 목판화는 지금으로 생각하면 관광지에서 구매할 수 있는 엽서나 포스터 정도로 키치적이지만 19세기말 당시 상당히 학구적이었던 유럽의 보수적인 미술계를 고루하게 여겼던 젊은 세대 아티스트 특히 고흐와 같은 인상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센세이셔널한 독창성으로 다가왔다. 최근 런던의 대영박물관(Brirish Museum)도 이 당시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호쿠사이(Hokusai)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마네에서 고흐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상주의 작가들이 호쿠사이의 작품을 비롯한 일본의 원색적 판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고흐는 일본식 회화 방식을 당대의 빛의 회화에 적용하는 연구에 더욱 몰두하기 위해 햇살이 가득한 남부 프랑스 '아를'지역에 아티스트 레지던시 스튜디오를 지어 뜻을 같이할 동료작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an artist colony'이다.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해바라기
고흐가 사랑했던 빛의 도시 아를에 지었던 'an artist colony'는 지금으로 말하면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작가는 그와 비슷한 창작의 패러다임을 가진 네 명의 아티스트들을 모아 함께 작업을 하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겠다고 믿었다. 고흐는 그의 생각을 바로 그의 동생이자 아트딜러였던 테오에게 전달하고 작가들을 모집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의 괴팍스럽고 집요한 성격 탓인지 레지던시에 입주하고자 하는 작가들을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테오는 그의 갤러리 소속이었던 폴 고갱(Paul Gauguin)에게 금전적인 지원도 약속하며 고흐의 스튜디오에 입주해 주기를 설득했고, 그동안 테오에게 많은 신세를 진 고갱은 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스튜디오의 첫 작가로 입주하게 된다. 자신의 첫 동료를 맞이하게 된 고흐는 고갱이 사용할 방을 꾸밀 계획에 들떠 있었는데 이러한 목적으로 제작한 회화 작품이 바로 '해바라기 (Sunflower, 1888-9)'이다. 해바라기 작품은 총 5점이 제작되었다. 두 점은 고갱의 방에 걸어 두었고, 나머지 한 점은 고갱과 지내던 시절에 그리고 나머지 두 작품은 이후에 그렸다고 한다. 총 세 가지의 노란색 톤으로 그려진 해바라기 작업은 고명도의 노란색 배경과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는 듯하다. 이는 즉 우키요에 미술의 캐논(cannon)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갱 또한 해바라기 작업을 고호만의 독창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 시리즈 중 한 작품을 소장하기를 바랐으나 결국 이 바람은 이루아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의자 (Chair, 1888-9)
고흐의 일대기에서 남부 프랑스 시기가로 일컫는 1888과 1889년 사이는 아티스트로서의 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기로써 그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세상을 타계하지 바로 전 일 년 남짓했던 이 기간 동안 고흐는 몸과 정신이 쇠약해질 데로 쇠약해져 극도로 예민함을 보였다. 자신의 초상화를 비평한 고갱의 판단이 오류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귀를 잘라 작품에 그려진 귀부분에 갖다 데어 비교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보임으로 해서 고갱과 함께 스튜디오를 공유마며 쌓이는 듯했던 그들의 우정은 얼마 가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의 성향 또한 극명한 차이를 보였는데 생생한 자연의 색들을 담기 위해 바다로 나가 보트 위에서 그림을 그렸던 고흐와는 달리 고갱은 이미 머릿속에 계획되어 있는 풍경을 화폭이 담았다. 이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고흐에게는 고갱의 비평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분노로 다가왔을 것이다. 얼마 못 가 고갱은 스튜디오를 나오게 되고 그는 스튜디오의 최초의 레지던시 작가이자 마지막 작가가 되게 된다. 고흐가 고갱과 마찰을 빚게 된 순간부터 그는 'an artist colony'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갈 것을 직감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되고 정신 병원을 오가며 마지막 유작들을 남기는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의자(Chair, 1888)'이다.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본 작품은 그가 남긴 마지막 초상화로 기록이 된다. 의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담배파이프와 구겨진 손수건만이 그려진 이 작품은 어떻게 그의 초상화로 해석되는 것일까? 그는 고갱의 마찰이 있던 시기 두 개의 의자를 그렸는데 하나는 고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작가 자신을 의미했다.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하고 푸른 톤을 사용하고 벽과 의자 위에 촛불을 그림으로 해서 어둑한 밤의 모습을 자아낸 작품은 고갱의 초상을 의미하고 반대로 밝고 강렬한 노란색을 사용하여 한낮에 비친 의자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바로 그 자신의 초상화였다.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이미지로 그려진 두 의자는 이 시기 고흐의 머릿속에 내재해 료와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고갱이 남기고 간 캔버스에 그린 고흐의 의자를 감싸 안은 화려한 색채는 의자의 모서리에 불안한 듯 놓인 그의 소지품과 함께 고흐가 당시 느꼈던 불안한 심경을 극대화하는 듯하다.
이렇게 한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독창성을 완성하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 수많은 노력과 고통이 동반이 된다. 더불어 그가 살았던 당대의 다양한 문화적 흐름들은 그 독창성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특히 고흐는 파리로 건너가 인상주의 화풍을 접하기 이전에 이미 네덜란드에서 북유럽 특유의 밀도 있는 유화기법을 배우며 탄탄한 회화적 기본기를 다져왔기 때문에 파리에서 경험한 전혀 다른 개념의 회화적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잘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발명된 인공 색소들은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색상의 명도와 채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술력으로 제작되었고, 휴대가 가능한 튜브 용기에 담겨 상용화되었는데 이는 자연의 빛을 강렬하게 담아낸 고흐의 작업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비록 미술사에는 안타까운 생을 살다 간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기는 하나 또 한편으로는 당시의 시대적 변화에 가장 큰 수혜를 입었던 화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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