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미술혁명 라파엘 전파
1848년 당시 영국은 혁명의 시대를 가고 있었다. 칼 막스(Karl Marx)가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을 발표하였고 도시는 크고 작은 프로테스트로 혼돈스러웠다. 이와 동시에 영국의 미술계에도 그들만의 혁명을 도모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자신들을 '라파엘 전파(The Pre-Raphaelites)'라 이름 지었다. 라파엘 전파는 당시 혈기 왕성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지녔던 20대 초반의 미술학도 세 사람,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etti) 그리고 윌리엄 홀먼 헌트 (William Holman Hunt)에 의해 결성된 미술 동맹이다. 19세기 초, 영국 최고의 미술 명문 학교였던 영국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 of Art)에 재학당시 그들은 아카데미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던 영국의 미술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당대의 미술을 매우 게으르고 창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매너리즘의 연장선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러한 원인을 미술사에서 후기 르네상스로 보았는데 특히 이탈리아 하이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라파엘(Raffaello Sanzio da Urbino)과 그가 만들어 놓은 미술의 캐논을 그대로 카피를 하고 하나의 또 다른 포뮬러를 만들어 낸 그 이후의 추종자들이 미술계를 이끌어 온 것을 원인으로 보고 라파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 진정성 있고 도덕적인 미술로의 회귀를 꾀하고자 하였다.
방법론
그럼 왜 하필 그들은 하이르네상스를 비롯한 그 이후의 시기를 지목했을까? 라파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서 당시 최고의 권력자이자 미술의 후원자였던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이 셋 중 가장 어렸던 라파엘은 르네상스의 정점을 찍던 하이르네상스 시대에 활발이 활동하였고 이후는 매너리즘 시기로 접어든다. 페루지노로부터 사사한 라파엘은 그의 스승과 선배 거장들이 연구해 온 공기/선 원근법, 빛의 표현, 자연색의 조화, 배경의 표현등 소위 말해 그림을 잘 그리는 법칙을 마스터한 후 여기에 자기만의 '인상'을 가미하여 자신만의 미술의 캐논(cannon)을 만들었는데 이를 'Raphaelesque style'라고 한다. 이러한 미술의 캐논은 이후 후세대 화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답습되고 점점 더 공식화되기에 이르렀다. 라파엘 전파 작가들은 이렇게 공식화되어 그려진 기존의 종교화 들을 특히 비판하였는데, 예수나 마리아 등 신성한 인물들의 표현을 이상화하고, 이를 위해 계산된 빛과 피라미드 구도, 그리고 뒷배경에 성의 없이 그려진 자연의 표현들은 자연을 거스르는 매우 인위적인 표현방법이며 교묘하기까지 하다고 선언하였다. 이들은 배경 즉 자연 또한 매우 자세하고 진실성 있게 표현이 되어야 하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그의 목자들 또한 신성시만 될 것이 아니라 사실성 있게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진정하고 진실하게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작품에 담는다. 화면의 위치와 상관없이 모든 자연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세밀히 관찰하여 그린다. 자아도취에 빠져 만들어진 기계적이고 진부한 표현 방법에서 벗어나 이전 시대의 미술이 보여 주었던 진솔한 표현과 감동을 표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빅토리안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성을 작품에 담아낸다.
존 에버렛 밀레이
그들이 작품을 발표했던 초기에 대중의 반응은 매우 싸늘했다. 비평가들은 마치 족보도 없고 버르장머리도 없는 악동들이 안하무인 격으로 나대고 있다는 듯한 표현들을 서슴지 않으며 혹평을 이어 갔다. 한 예로 존 에버렛 밀레이는 성경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부모님의 집에 계신 예수님 (Christ in the House of His Parents)'를 발표하였는데, 찰스 디킨스는 이 그림을 가리켜 한마디로 천박하고 무례하며 작품이 가지는 미학적인 가치는 조금도 없다고 했다. 밀레이는 이 작업을 통해 기존의 미술의 캐논타파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미술의 방식을 담고자 했다. 누추한 노동자 계층의 작업장을 배경으로 예수와 그의 부모의 모습을 묘사한 이 그림에는 기존의 피라미드 구도대신 인물들이 화면에 고루 분포된 대칭적인 구도가 사용되었다. 마리아와 예수는 주변의 인물과 같이 노동자 계층으로 누추하게 표현이 되었으며 예수에 손에 난 생체기에 번진 핏자국은 마치 실제로 피냄새가 풍겨질 것 같은 거부감을 풍긴다. 또한 뒷 배경의 창문너머 그려진 양 떼의 모습에서 양 하나하나는 모두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밀레이는 양의 세밀한 표현을 위해 실제로 도축장에서 잘린 양의 머리를 스튜디오로 가져와서 세밀히 관찰해 가며 그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왕립 미술원 역사상 11살이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입학했던 미술의 신동 밀레이에게 디킨즈의 혹평은 상처가 되었다기보다는 당시의 보수적인 미술계를 자극시켰던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 이후 4명의 멤버가 추가되어 총 7인이 새로이 동맹을 맺은 라파엘 전파는 또 다른 지식인 러스킨의 호평을 등에 업고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지금까지 영국 미술사에 중요한 미술 그룹으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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