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레고리란 한 인물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알리는 단서로 사용되어 왔다.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더욱 인기 있었던 알레고리 회화는 한 인물 혹은 집안의 교양과 부의 척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알레고리 중에서도 사과, 포도, 오렌지라는 이 세 가지 과일 속에 감추어진 알레고리 미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과일 속에 감추어진 알레고리, 사과
서양미술에서 사과라는 열매는 유혹, 원죄, 욕심 그리고 죽음이 예견된 운명이라는 알레고리로서 사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소재중 하나는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아담과 이브'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쓰인 이 일화는 그동안 고전미술화가들의 작품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는 당시 화가들의 주된 고객 중 하나였고, 글을 모르는 서민들을 위해 성경의 메시지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주로 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예로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아담과 이브의 일화를 담은 작품 '인간의 타락 (The Fall of Man, 1628-29)'에서 볼 수 있듯이 창조주에 의해 금기되었던 사과 열매를 뱀의 유혹에 못 이긴 이브가 먼저 먹게 되고 이를 따른 아담도 함께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당한다. 황금사과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를 상징하는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파리스 심판에서 그를 설득하여 황금사과를 쟁취해 낸 비너스는 그리스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의 여신으로 기록되었지만 이는 트로이전쟁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기도 했다.
포도
포도가 내포하고 있는 알레고리는 예수님의 '피'이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서 고전 미술에서 예수님을 묘사하는 알레고리로써 자주 등장한다. 마사치오의 'Mother and Child'회화에서 등장하는 아기 예수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포도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포도알을 하나 떼어 입으로 넣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천진 난만하게만 보이는 아기예수의 인생에 펼쳐질 고난의 길을 상징한다. 반면, 와인의 원료이기도 한 포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술의 신'인 바쿠스(디오니소스라고도 불림)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포도는 많은 세속화에서 환락의 기쁨과 방탕함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써 차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화를 담은 회화 'The Triumph of Bacchus'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베니스학파 화가인 티치아노(Titian) 그리고 바로크시대의 스페인 화가인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등 당대 다양한 유럽의 화가들에 의해 재현되었다. 또한 6세기 이탈리아의 라베나 지역에 지어진 바실리카 성당 (The Basilica of San Vitale in Ravenna)은 비잔틴양식의 모자이크로 성당의 내부가 장식되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포도를 수확하는 장면은 로마제국의 번영과 부를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쓰였다.
오렌지
고전미술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미술에서 오렌지는 한 가문과 개인의 '부'를 과시하는 알레고리고 사용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오렌지를 재배하지 않았기에 전적으로 수입에 의지했었다. 따라서, 가격이 상당히 높고 구하기도 힘들어 당시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만이 향유했던 럭셔리 아이템 중 하나였다. 오렌지의 알레고리는 주로 세속화 (Secular painting)에 등장하는데 북부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얀 반 아이크 (Jan van Eyck)의 아놀피니 초상 (Arnolfini Portrait, 1434)이 좋은 예이다. 당시 유화를 재료로 다루어 세밀한 인물 표현에 능해던 북부 유럽의 화가들은 부강했던 이탈리아의 신흥부자들로 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갑작스러운 부를 거머쥔 베니스 지역의 상인들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명예 즉, 가문의 클래스에 집착했고 회화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신흥 부자였던 아놀피니는 부인과의 사랑에 대한 서약과 앞으로 일구어 나갈 가족의 번창을 기원하는 작품을 얀 반 아이크에게 주문하였는데 여기에 생뚱맞게 등장하는 오렌지는 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알레고리로 삽입되었다. 이외에도 귀족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의 이미지나 신화의 이미지에 등장하는 힘 있는 존재에 자신을 투영하는 그림들을 주문하였는데 여기에도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과일이 바로 오렌지였다. 무역과 교류의 상징이기도 한 오렌지는 동시대 사회에서는 다문화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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